솔선수범 신앙생활
이신구 목사
2차 세계 대전 중 인류 역사상 최대 군사작전이었던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1944년 6월 6일에 유럽주둔 연합군 총사령관 아이젠하워의 지휘 아래 실시되었습니다. 288만 명의 군인들과 1만 3천 7백 대의 전투기, 9천 척의 군함이 동원된 최대 규모의 작전이 성공함으로 프랑스가 해방되었고 전쟁의 판도도 연합군으로 기울게 되었습니다.
이 작전을 성공시킨 아이젠하워는 훗날 미국의 34대 대통령이 되었는데, 그의 삶의 중심에는 주일성수와 성경과 기도가 있었습니다. 그는 전쟁 중에도 항상 성경을 지니고 다니며 읽었으며, 상륙작전이 있기 전에는 하나님께 기도한 후 장병들에게 모든 것을 하나님의 손에 맡겼으니 행동으로 들어가자고 외쳤다고 합니다. 대통령이 된 후에도 세계 정상들과의 만남에서도 그는 철저히 주일성수를 했다고 합니다. 그가 남긴 말 중에 ‘리더는 앞에서 끌면서 솔선수범을 해야 합니다. 짐승은 뒤에서 몰아도 되지만 사람은 앞에서 인도해야 합니다’라는 말은 제게 큰 깨우침을 주는 가르침입니다.
성도는 말로만 ‘주여!’라고 외치는 자가 아닙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앞장서서 솔선수범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누가복음 6:46에서 예수님은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나의 말하는 것을 행치 아니하느냐”고 하셨고, 마태복음 7:21에서는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고 하셨습니다.
성도로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과 뜻대로 사는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대통령이든 일반 국민이든 성도라면 당연히 솔선수범하는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솔선수범(率先垂範)이란 다른 사람들 보다 앞장서서 행동하여 몸소 본보기가 되는 것을 말합니다.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고 그 가운데 기록된 대로 행하는 삶을 말합니다. 다른 이들보다 더 기도의 무릎을 꿇고 하나님과 사람 앞에 모범적인 삶을 사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추구해야 할 신앙생활입니다.
솔선수범하는 신앙생활은 환경에 좌우되지 않는 모범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서의 사명을 다하려는 자에게는 이런 솔선수범이 필요합니다. 빛을 발하려면 등경 위에 놓인 빛이어야 하고 소금이 되려면 맛을 잃지 않아야 합니다. 외형으로는 독실해 보이면서 행함이 없는 죽은 믿음을 가진 바리새인들처럼 살아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삶을 사는 자들을 가리켜 마태복음 23:13에서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청교도들이 박해를 피해 영국을 떠날 때, 그들은 예수님께서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마태복음 5:14)라고 말씀하신 “산 위에 있는 동네”(City upon a hill)를 짓기 위한 목적을 가졌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바라보는 세상의 빛이 되어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청교도들이 선택한 길은 바로 신앙생활의 솔선수범이었습니다. 날마다 성경을 읽는 내 모습과 항상 기도하는 내 모습, 그리고 언제나 주일성수하는 내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되는 것만큼 복된 일은 없을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2022년 8월 7일 조이플 교회 목회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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