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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하고픈 이야기

소망 가운데 즐거워하십시오

by 조이플 교회 2020. 2. 16.

[사진 김은아 집사]


소망 가운데 즐거워하십시오

이신구 목사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에게 있어서 즐거움이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재밌는 놀이나 일들을 통한 즐거움도, 돈을 많이 버는 즐거움도, 권력을 얻어 행세하는 즐거움도, 지식을 쌓아 존경을 받는 즐거움도, 건강하여 무엇이든 해낼 것 같은 즐거움도 하나님으로 인하여 얻는 즐거움에는 미치지 못합니다. 성도들에게 있어서 즐거움이란 세상이나 우리들 자신이 정한 기준에 의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더불어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즐겁다고 여기는 모든 것은 결국에 죽음 앞에서는 다 사라지는 것들입니다. 오직 우리에게는 하나님 나라만이 영원합니다.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하게 될 천국의 삶을 미리 알고 소망하며 사는 것이 성도의 즐거움입니다.


소망 가운데 즐거워하십시오. 자신에게 있는 삶의 즐거움이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를 살피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아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시는 즐거움으로 사는 자들은 이 땅위에서의 환난이나 고통에 괴로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는 것이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을 알기 때문입니다(로마서 5:2-3). 


결국 성도의 즐거움은 환난을 소망으로 바라보는 데서 시작되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생의 아골 골짜기로 소망의 문을 삼아 주시는 분이시기에 극심한 환난 가운데에서도 소망을 잃지 않을 때 기쁨이 찾아오는 것입니다(호세아 2:15). 


예수님께서 강도를 만난 사람을 도와 준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를 말씀하실 때, 굳이 장소를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났다고 하셨는데 그곳이 바로 아골 골짜기였습니다. 그는 거의 죽은 상태로 버려졌지만, 제사장도 레위인도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갔습니다. 여행 중이던 사마리아 사람만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었다고 하셨습니다(누가복음 10:30-36). 그야말로 사마리아 사람은 아골 골짜기에 빠진 사람을 소망의 문으로 인도한 이웃이었던 것입니다. 강도를 만나 죽을 정도로 괴로웠지만 그에게 주어진 소망 때문에 즐거웠을 것입니다.


베드로는 베드로전서 4:13에서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고난에 참여하는 자들을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주님 때문이라면 아골 골짜기 빈들이든 어디에든 즐거움으로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소망의 주님을 바라보며!


감사합니다.


2020년 2월 16일 조이플 교회 목회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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