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는 큐티
2019년 4월 23일(조이플 큐티 제1348호)
이신구 목사
(성경) 히브리서 11:7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좇는 의의 후사가 되었느니라”
성도가 되려는 사람은 성도의 무게를 견뎌야 합니다. 하나님의 구원 받은 백성으로 살아가는 삶이 갖고 있는 그 무게가 만만치 않기 때문입니다. 성도이기 때문에 이유 없이 받아야 하는 핍박의 무게가 있습니다. 성도로서 준행해야 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책임감도 또한 가볍지 않습니다. 똑같은 상황에서도 세상이 성도에게 주는 시선의 무게는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 보다 기대치가 더 높습니다. 이런 저런 이유로 성도라는 이름이 주는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무거워서도 아니고 성도로서 행해야 할 일들이 버거워서도 아닙니다. 단지 성도의 무게를 인간의 방법으로 덜어내려고 하기 때문에 무거울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지렛대와 같습니다. 무거운 물건을 들 때 지렛대를 이용하면 힘을 적게 들이고도 가볍게 들 수 있습니다. 아르키메데스가 ‘크기가 알맞은 지렛대만 있다면 지구도 들어 올릴 수 있다’고 한 말은 유명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지렛대를 사용해도 받침대를 어디에 놓느냐에 따라 무게가 달라집니다. 받침대가 무거운 물건에 가까이 놓일수록 더 가벼워지지만 멀게 놓이면 더 무거워집니다.
받침대는 삶의 기준점이 됩니다. 성도의 무게가 무겁다는 것은 삶의 지렛대의 기준이 되는 받침대를 성도 쪽이 아닌 자기 자신 쪽으로 가깝게 두기 때문입니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내 생각대로 살아가는 삶의 기준으로는 성도의 무게는 천근만근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만약 삶의 기준인 받침대를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성도 쪽으로 이동해 가면 갈수록 성도의 무게는 가벼워지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받침대를 성도 쪽으로 이동해 살아가는 것을 신앙생활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와 받침대 사이의 거리가 바로 믿음의 크기가 됩니다. 오늘도 믿음으로 성도의 무게를 견뎌냅시다.
감사합니다.
(기도제목)
전능하신 하나님!
성도로써 살아가는 모든 삶의 무게를 주님의 말씀으로 견디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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