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하는 그리스도인이 필요합니다
이신구 목사
그리스도인이라서라기보다 사람은 대화를 통하여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고 상대방의 의중도 헤아리게 되기에 대화하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위해 서로 교통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며 교제하는 것만큼 중요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분들이 대화한다고 하면서 서로의 말만 전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말을 하는 것과 대화하는 것은 다르기 때문입니다. 누군가와 교제하기 위해서는 형식적인 말보다는 대화가 필요합니다.
말은 하지만 대화로 이어가기 힘든 말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굿모닝’ 혹은 ‘식사하셨어요?’ 등과 같은 뻔한 질문들은 이미 답이 정해져 있는 언어일 뿐입니다. 그래서 뻔한 질문은 닫힌 질문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대화를 닫아버리는 질문과 답변이기 때문입니다. 상대가 ‘굿모닝’이라고 인사하면 똑같이 ‘굿모닝’으로 답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또는 ‘식사하셨어요?’라고 물으면 그냥 ‘네’라고만 답해도 됩니다. 좀더 친한 사이라면 ‘뭐 드셨어요?’라고 되물을 수는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뻔한 질문이나 이미 답이 정해진 질문들을 주고 받는 것으로 대화를 나누었다고 말하기에는 뭔가 부족함이 있습니다. 정해진 답을 들으려고만 하지 말고 상대방의 감정과 의견을 들으려고 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특히 예배하기 위해 교회에 왔을 때, 아무런 대화도 나누지 않고 헤어지는 것만큼 안타까운 일은 없을 것입니다. 어쩌면 대화하기 위해 다가가는 것이 서먹해서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실상은 많은 사람들이 대화하는 법을 잘 모릅니다. 그런 훈련이 되어있지 않습니다. 부모와 자녀 간에도 대화하는 법을 잘 모릅니다. 형제간에도 대화하는 법을 잘 모릅니다. 그러다 보니 대화를 하려다가 다투고 상처를 받다 보니 점점 대화를 거부하게 되는 것입니다. 부부싸움을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문제는 대화에 있습니다. 대화를 통해 의사를 전달하려 하기 보다는 상대방을 판단하는 습관이 많습니다. 상대방의 말을 트집 잡아 그 사람을 판단하고 무시하고 정죄하기까지 합니다.
우리가 대화를 나누려면 닫힌 질문이 아니라 열린 질문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열린 질문에는 감정과 관심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닫힌 질문은 말하려는 주제가 대화의 중심이 되지만, 열린 질문은 말하는 상대가 중심인 대화를 나누게 됩니다. 예를 들면, ‘뭐 드셨어요?’라는 질문 대신에 ‘식사는 어땠어요?’라는 질문은 상대방의 관심과 감정을 묻는 질문이기에 잠시 생각하게 되고 정해진 답이 아니라 오직 상대에게서만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게 됩니다.
사람의 머릿속에는 상대가 해준 좋은 말을 기억하기보다는 비난과 모욕, 불평과 원망 섞인 말들로 받은 상처가 나쁜 기억으로 남는 법입니다. 말하기 좋아하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대화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왜 계명을 통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시면서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셨는가를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의 대화의 중심에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함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아무 말 대잔치의 대화가 아닌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화로 가정과 교회가 행복해지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우리에게는 대화하는 그리스도인이 필요합니다.
감사합니다.
2024년 7월 7일 조이플 교회 목회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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