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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하고픈 이야기

보고 싶은 예수님의 얼굴

by 조이플 교회 2018. 12. 9.


보고 싶은 예수님의 얼굴

     이신구 목사   

성탄절이 다가옵니다. 12월 25일은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며 기념하는 날입니다. 인류를 죄악에서부터 구원하기 위해 오신 예수님이시기에 기독교인들 뿐 만 아니라 모든 인류가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세월이 흘러갈수록 성탄절은 그 의미가 많이 변질되어 가고 있습니다. 성탄절의 주인공인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는 경배보다는 먹고 마시고 선물을 주고받으며 즐기는 축제가 중심이 되어 예수님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사람들 간에 성탄절 때 나누었던 메리 크리스마스 대신 이젠 해피 홀리데이로 인사하기를 더 좋아합니다. 매번 성탄절 때 마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반복하는 말이지만 세상에서 크리스마스(Christmas)는 크리스리스(Christless)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성탄절에 틀린 것이 또 있습니다. 전혀 그럴 수 없는데도 그동안 누구도 문제를 삼지 않았던 인류의 잘못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전 세계 곳곳에 퍼져 있는 예수님의 얼굴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2천 년 전의 삭개오처럼 예수님의 얼굴을 보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각자의 마음속에 있는 뽕나무를 이용해서 예수님을 상상합니다. 그 상상의 결과가 서양 예술가들에 의해 누가 봐도 잘생기고 인자하게 생긴 백인의 모습을 한 예수님의 얼굴이 탄생되게 했습니다. 


사람의 얼굴을 마음의 거울이라고 합니다. 그것은 사람의 마음에 있는 생각들이 얼굴에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마음속에 상상하는 예수님을 예수님의 초상화에 나타나게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될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유럽의 어느 마구간에서 태어나신 백인이 아니라 유대 땅 베들레헴에서 육신으로는 마리아와 요셉의 아들로 태어나셨습니다. 


전 맨체스터대학 리처드 니브 교수가 이스라엘의 갈릴리 호수 주변에서 발굴한 예수님과 같은 시기의 셈족 두개골을 분석해 내 놓은 가상의 예수님의 얼굴은 지금 우리가 상상하고 믿고 있던 예수님과는 너무도 다른 얼굴이었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이사야 선지자가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이사야 53:2)라고 예언한 말씀을 잊어 온 것은 아닐까요? 이사야의 예언대로라면, 예수님의 얼굴을 영화배우와 같은 멋있는 모습으로 상상하고 믿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다윗을 왕으로 선택하실 때에도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사무엘상 16:7)고 하셨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예수님의 얼굴이 상상으로 그려진 초상화가 아닙니다. 십자가를 지고 그 언덕을 오르셨던 예수님을 믿는 믿음일 뿐입니다.


감사합니다.

조이플 칼럼(2018년 12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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