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배를 가진 자처럼
이신구 목사
중국 고사에 주머니 속에 있는 송곳이라는 낭중지추(囊中之錐)라는 말이 있습니다. 주머니 속에 뾰족한 송곳을 넣으면 가만히 있어도 그 끝이 주머니를 뚫고 나오듯, 재능이 뛰어난 사람은 숨어 있어도 남의 눈에 띄기 마련임을 비유하는 말입니다. 어릴 때, 병아리를 키우고 싶어서 몰래 주머니에 넣어 방안으로 들어오다가 삐약거리는 소리에 들켰던 기억이 납니다.
바울은 우리를 모두 질그릇이라고 했습니다. 질그릇은 조금만 충격을 받아도 깨져버리기에 그릇 중에는 가장 약한 그릇입니다. 그만큼 인간인 우리가 나약함을 알리고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린도후서 4:7)고 했습니다. 특히 그처럼 약한 질그릇인데도 우리들이 하나님의 큰 능력 가운데 거할 수 있는 이유는 다름 아닌 하나님이 주신 보배를 질그릇에 가지고 있기 때문임을 말씀합니다.
질그릇은 아무 것도 아니지만 그 안에 보배를 가지는 순간부터 낭중지추가 되어 보배를 드러내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질그릇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그 안에 담은 것이 보배이기 때문에 대접을 받게 됩니다. 솔직히 질그릇이 보배를 담는다는 것 자체가 굉장한 일입니다. 웬만한 부자가 아니고서는 질그릇에 보배를 담을 수가 없습니다. 질그릇이 아닌 보배만큼 가치 있는 그릇에 담아야 보배가 더 보배롭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르십니다. 질그릇인 우리에게 보배를 맡기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더 이상 질그릇이 아닌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셨습니다. 질그릇만큼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우리들에게 예수님을 믿을 수 있는 믿음을 주시고 그 보배를 품고 살게 하셨습니다. 보배를 가진 질그릇은 그 순간부터 놀라운 대접을 받고 삽니다. 하나님의 그릇이라고 하는 자녀로서의 삶을 살게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잘나고 못남에 관심을 갖지만, 더 이상 질그릇에겐 잘났는지 못났는지는 상관이 없습니다. 오직 보배만이 중요할 뿐입니다. 질그릇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보배를 가졌느냐가 중요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질그릇으로 사는 삶 보다 보배를 가진 질그릇처럼 사느냐가 중요합니다. 보배를 담고 있기에 이전에 막 굴러다니던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보배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보배를 가진 자처럼 삶이 바뀌어야 합니다. 물론 질그릇이 보배가 될 수는 없지만, 질그릇 안에 있는 보배 때문에 보배와 같은 대우를 받고 있음을 잊지 말고 가치 있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질그릇이 가치 있어서 보배를 담은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보배를 맡기신 분께서 인정하실 만큼 귀하고 가치 있는 삶으로의 변화가 필요합니다.
감사합니다.
조이플칼럼(2018년 12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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