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일정량의 법칙
이신구 목사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들을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그들의 삶에 있어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을 찾으려는 것만큼 큰 힘이 되는 것은 없을 것입니다. 열심히 기도한 대로 자기가 아닌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가도의 능력은 기도하는 사람들만이 알고 간직하는 비밀스러운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종종 고민합니다. 어떤 기도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도인지를 알기 위해서 더러는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려는 자들도 있고, 어떤 이들은 아예 기도하지 않아도 다 아시기에 알아서 해 주실 것이라는 하나님의 능력을 강조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기도의 질이냐? 기도의 양이냐?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누구도 다른 쪽을 외면할 수 없다는 진실 앞에 놓이게 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일에는 모두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들 중에 어느 누구도 하나님 보시기에 격조 높은 기도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또한 누구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만큼의 기도를 채울 수 있는 사람도 없습니다. 단지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에 따라 인정해 주시고 응답해 주실 뿐입니다.
누구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만큼의 기도를
채울 수 있는 사람도 없습니다.
기도응답은 기도의 질이나 양에 의해서가 아닌 하나님의 때가 되어야 이루어지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바울이 말씀한 대로 쉬지 말고 기도하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일 것입니다. 하나님의 응답이 이루어질 때까지 기도를 쉬지 않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작정하신 시기와 방법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대로 이삭을 낳기까지 하나님의 때를 깨닫지 못하고 엘리에셀이나 이스마엘을 내세우려 했지만, 하나님은 이삭을 낳기 위하여 그를 100세까지 기다리게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의 기도의 질이나 양이 우리의 것보다 못해서 응답이 늦춰진 것이 아님을 부인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때가 채워지기까지 그로 하여금 믿고 기도하게 하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이든 오늘날의 우리들이든 기도에는 일정량의 법칙이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모든 인생들에게 획일적인 기도의 양이 정해졌다기 보다는 각자에게 하나님이 “차기까지” 기다리시는 기도가 있다는 것입니다. 각자의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기도로 채워가는 것입니다. 사람마다 다른 것이 있다면, 어떤 이는 문제가 생기기전에 이 기도를 쉬지 않고 채워 늘 형통한 삶을 사는 자가 있고, 어떤 이는 기도를 잊고 살다 문제에 빠져 정신을 차리고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시간이 지난 뒤 이 두 종류의 사람 각자가 기도한 양이 같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지혜로울까요? 당신은 기도의 양을 충분히 채우고 있습니까?
감사합니다.
(2019년 3월 10일 목회칼럼)
'칼럼, 하고픈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나님의 ‘또사랑’ (0) | 2019.03.24 |
---|---|
다니엘에게서 요셉이 보입니다 (0) | 2019.03.17 |
평생을 믿음으로 사는 복 (0) | 2019.03.03 |
세 이레가 차기까지 (0) | 2019.02.24 |
하나님 제 기도가 들리시나요? (0) | 2019.02.17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