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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하고픈 이야기

하나님의 ‘또사랑’

by 조이플 교회 2019. 3. 24.


하나님의 ‘또사랑’


이신구 목사


성경을 통해 우리는 인간이 얼마나 하나님 앞에 죄악 된 모습을 반복적으로 보여드리는 가를 보게 됩니다. 죄악의 경중을 떠난다면, 아담과 하와의 원죄보다 더 큰 죄악을 저지르며 인류 역사를 이루어 왔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100년 전에도 인류는 하나님 앞에 죄인이 되었고, 천 년 전에도 이천 년 전에도 인류는 죄인의 모습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습니다. 정말이지 “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로마서 3:10)라고 한 말씀 그대로 의인의 수는 ‘0’라고 해도 반론을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오늘날도 우리는 ‘또죄인’이 되어 살고 있습니다.


또한 성경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이 얼마나 인간의 죄악 된 모습을 보시면서도 반복적으로 용서라는 사랑을 베푸시는 가를 보게 됩니다. 아담과 하와의 선악과를 따 먹은 죄악에서부터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죄악에 이르기까지 씻을 수 없는 죄악까지도 회개하는 자들에게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은 “내가 무궁한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는 고로 인자함으로 너를 인도하였다 하였노라”(예레미야 31:3)고 하신 말씀 그대로 하나님의 사랑은 ‘∞(무한대)’라고 해도 부족한 표현일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또사랑’으로 우리를 살리십니다.


예수님께서 주신 새 계명이 오직 사랑으로만 이루어진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한복음 13:34) 그런 의미에서 새 계명은 ‘또사랑 계명’인 셈입니다. 계명을 지키려는 믿음과 계명을 바라보는 소망과 계명을 실천하는 사랑 중에 제 일은 사랑이라고 할 수 있는 용기도 역시 ‘또사랑’의 위력을 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또사랑’은 세상에서 부모님의 사랑으로 복사되어 우리들에게 항상 하나님의 사랑을 복습하도록 따라다니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부모님의 사랑이 하나님의 ‘또사랑’처럼 무조건적인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당연시하는 습관 때문에 친구의 우정보다 무시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친구든 이성간의 사랑은 ‘또사랑’이 아닌 ‘또다른 사랑’이기에 헤어져도 다시 다른 누군가를 통해 찾아올 수 있지만, 부모님의 사랑은 오직 자녀에게만 주어지는 사랑이기에 외부에서는 얻을 수 없는 유일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향하여 택하신 사랑은 ‘또다른’ 사랑이 아닌 ‘또사랑’임이 너무도 감사하며 그 자체가 은혜임을 깨닫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무조건적으로 우리를 용서하십니다. 전혀 그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는데도 절대로 버리지 않으시고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또사랑’이 오늘도 우리들의 삶 가득 넘치심을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2019년 3월 24일 목회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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