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나와 보이지 않는 나 사이에서
이신구 목사
미처 생각하지 못했을지라도 나에게는 ‘보이는 나’와 ‘보이지 않는 나’가 있습니다. 확실한 것은 보이든 보이지 않든 나는 나라는 것입니다. ‘보이는 나’는 몸이고 ‘보이지 않는 나’는 마음과 영입니다. ‘보이는 나’는 몸의 눈과 귀로만 보고 들을 수 있습니다. 반면 ‘보이지 않는 나’는 마음과 영으로만 인식할 수 있습니다. ‘보이는 나’든 ‘보이지 않는 나’든 분명 같은 ‘나’인데 형체가 다르고 방식이 다릅니다. 성경은 ‘보이는 나’를 겉사람, ‘보이지 않는 나’를 속사람으로 설명했습니다.
고린도후서 4:18에서는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고 했습니다. 보이는 겉사람의 존재는 잠깐이지만, 보이지 않는 속사람은 영원합니다. 보이는 이 땅에서의 삶보다 보이지 않는 천국에서의 삶이 영원한 것입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은 영원한 것에는 소홀히 하고 잠깐인 겉사람에게는 올인하려 합니다. 결국 육체의 만족을 얻기 위해 영혼의 미래를 불행 속으로 던져버리는 셈입니다. ‘보이는 나’와 ‘보이지 않는 나’ 사이에서 겪는 욕망의 갈등은 실망스럽기도 하지만, 영육 간의 강건함으로 이루어가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거룩한 열정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하나님은 ‘보이는 나’와 ‘보이지 않는 나’ 모두를 통하여 영광 받기를 원하십니다. 특히 보이지 않는 나의 속사람은 보이는 나의 겉사람에 의해 영향을 받습니다. 겉사람의 자세와 언어와 행동이 속사람에게 영향을 미침을 명심해야 합니다. 육신으로 무엇을 보고 무엇을 듣는가가 마음의 평강과 영적인 은혜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내가 무엇을 보든, 무엇을 듣든, 무엇을 먹든, 그리고 어디에 있든 상관없다는 위험한 생각이 우리의 마음을 병들게 할 수 있습니다. 성도에게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히브리서 11:1)이기에 보이지 않는 것들에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 분이시라는 사실은 우리의 영혼과 더 긴밀한 관계가 되심을 보여줍니다. ‘보이는 나’와 ‘보이지 않는 나’ 사이에서 우리에게 무엇이 더 중요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보이지 않기에 등한시한 것들에 대하여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보이는 육신의 배고픔에는 온갖 좋은 것으로 배불리려 하면서도 보이지 않는 영혼의 굶주림에 대해서 무관심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오늘 설교를 위해 40일 전부터 재밌는 실험을 했습니다. 새 밥을 지어 두 개의 용기에 같은 양의 밥을 넣어 한쪽에는 [싫어 미워!, 너는 안돼!, 너는 나쁜 애야!, 바보, 멍충이, 등신, 죄]라는 부정적인 글들을 붙였습니다. 그리고 다른 용기에는 [사랑해, 고마워, 너도 할 수 있어!, 너는 좋은 애야!, 최고, 예쁜이, 멋있어, 회개]라는 긍정적이고 신앙적인 글들을 붙였습니다. 그리고 두 용기를 같은 조건의 장소에 단지 놓아두기만 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이런 비슷한 실험을 시도해서 같은 결과를 얻는 것처럼, 두 용기 안에 있는 밥에도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그 결과는 오늘 설교에서 볼 수 있습니다.
밥이 들어 있던 용기의 겉에 무슨 글이 쓰여있느냐에 따라 속 안에 있는 밥이 변했다면 보이는 내가 보이지 않는 나에게 주는 영향력을 무시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보이는 나’를 통해 ‘보이지 않는 나’를 사용하기 원하십니다.
감사합니다.
2022년 9월 4일 조이플 교회 목회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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