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신앙으로 산다는 것은 다릅니다
이신구 목사
흙수저에서 대한민국 상위 1%의 부를 이룬 의사 이하영 씨가 쓴 [나는 나의 스무 살을 가장 존중한다]는 책을 통해 저자는 ‘나는 매일 아침 5시 50분에 눈을 뜬다. 시계의 앞자리가 6이 되기 전에 른 일어나는 이유는 5가 주는 설렘과 긴장감이 좋기 때문이다’라고 했습니다. 그가 이렇게 하는 이유는 ‘하루 두 번 5시를 보면 인생이 달라진다’는 책의 한 구절을 떠 올리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이 책에서 인생의 숱한 고비를 넘기며, 오늘의 부와 행복을 펼치기까지의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미래에 대한 확신이 꿈을 현실로 만든다는 메시지를 전하면서, 성공한 사람들은 항상 3감한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 3감은 감사하고 감탄하고 감동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3불한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 3불은 불평과 불만과 불안이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과거를 불평하고 현재에 불만을 가지고 미래를 불안해 한다는 것입니다.
누구에게나 어려움은 찾아올 수 있습니다. 예상치않은 문제로 낙심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불평과 불만으로 불안해 하는 것과 그때마다 오히려 감사하고 감탄하며 감동을 받는 삶을 사는 것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어떤 마음으로 살고 있는가는 이미 얼굴 표정만 봐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늘 기도하면서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는 삶을 사는 자가 되면 성령님께서 주시는 힘으로 자신도 모르는 평안함을 소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의 뒤를 따르라고 하심도 내가 겪는 인생의 모든 짐을 주님 앞에 내려 놓고 나의 십자가를 지고 오직 주님만 따라가라고 하신 말씀입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부활 신앙으로 살아가려면 모든 인생의 고난과 환난을 주님께 맡겨야 합니다. 그 짐을 맡기지 않으면 불평과 원망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습니다.
확실한 것은 우리가 이 땅에 온 것도 내가 원해서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태어나게 하셨기에 왔듯이, 이 땅에서 사는 것도 역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갈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것을 깨우치지 못하면 늘 바둥거리며 살다가 불안의 늪속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공식과도 같은 부활의 과정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죽어야 부활한다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에서 그리스도의 부활을 전하던 바울이 31절에서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 고백한 것은 부활 신앙의 공식을 알기 때문인 것입니다. 나를 부인해야 십자가를 지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세례 요한도 요한복음 3:30에서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는 믿음으로 자신의 사명을 감당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겪는 고난은 망하게 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구원하시고 영광스럽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깊으신 뜻이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나사로가 병들었을 때도,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요한복음 11:4)고 하신 말씀처럼 우리의 모든 삶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기회를 주심이 복임을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2024년 4월 14일 조이플 교회 목회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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