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하는 사람이 인생을 바꿉니다
이신구 목사
10%의 법칙 혹은 90:10 법칙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스티븐 코비 이론이라고도 하는데 우리의 인생의 10%는 우리에게 일어나는 사건들에 의해 결정되지만 나머지 90%는 우리가 그 사건에 대해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는 주장입니다. 인생에서 일어나는 일을 정확하게 숫자로 정리할 수는 없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10%의 법칙은 유익한 깨우침을 주고 있습니다.
마치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전리품의 10%를 드린 것이나, 야곱이 돌기둥을 세우고 하나님 앞에 십일조를 드리겠다고 서약한 것 등을 통해 우리는 십일조를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도 말라기 3:10에서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고 하셨습니다.
물론 십일조와 10%의 법칙은 다른 것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소득의 10%를 하나님께 온전히 드림으로 90%가 하나님의 축복으로 가득 차는 원리에는 우리가 깨닫지 못하는 하나님의 뜻이 있음은 분명합니다. 확실한 것은 감사하는 마음으로 십일조를 드리는 자에게 하나님은 더 큰 감사를 하게 될 복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하나님의 뜻대로 이끌어 가십니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하나님이 모르시는 것이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겪는 인생의 모든 문제도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안에 있는 하나님의 뜻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바울은 데살로니가전서 5:18에서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것에 하나님 앞에 감사하지 않을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실제로 우리의 인생에 90:10이라는 10%의 법칙이 어느 정도 작용한다면, 그래서 내 인생에 일어나는 10%의 사건을 믿음으로 잘 대처하고 대응한다면 나머지 90%가 바뀔 수 있는 셈입니다. 이는 보는 시각에 따라 인생의 고난을 이겨낼 수 있음을 격려하는 원리가 되기도 합니다. 즉 내 인생에 일어나는 고난이든 실패든 역경은 아무리 커도 10% 정도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하나님 앞에 감사하고 긍정적인 생각으로 대처한다면 90%는 엄청난 가능성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10%의 사건은 누구도 통제할 수 없는 사고일 뿐입니다. 그 일에 대하여 화를 내거나 불평한다고 해서 바꿀 수 없는 이미 일어난 일인 것입니다. 누구도 통제할 수 없는 10%의 일 때문에 내 인생의 90%를 도박처럼 날려버릴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나에게 일어난 일들에 감사할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감사하는 사람이 인생을 바꿀 수 있도록 복을 주실 것입니다.
실패했습니까? 병들었습니까? 넘어졌습니까? 화내고 좌절하고 스트레스를 받아도 상황은 변하지 않고 오히려 내 마음만 더 악화될 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겪는 10%의 삶에 대하여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십니다. 그것이 내 인생의 90%를 완성해 주시려는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감사하는 사람이 인생을 바꾸도록!
감사합니다.
2024년 11월 24일 조이플 교회 목회칼럼
평신도/공동체 성경읽기를 통해 언제나 어디서나 항상 성경을 읽으시기 바랍니다.
공동체 구약 성경 통독 (한 자 한 자 손으로 짚어가면서 읽는 성경).
공동체 신약 성경 통독 (한 자 한 자 손으로 짚어가면서 읽는 성경).
공동체 성경읽기는 평신도가 읽고 평신도가 함께 들으면서 성령님의 감동으로 이해하며 함께 성경을 통독하기 위하여 시행하는 성경읽기 운동입니다.
성도님들이 읽어주신 성경을 함께 들으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시기 바랍니다.
오늘 들으면서 읽으시는 성경에는 반드시 읽었다고 댓글로 남겨 주시기 바랍니다.
'칼럼, 하고픈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은 다릅니다 (1) | 2024.11.17 |
---|---|
신앙생활은 신앙으로 생활하는 것 (1) | 2024.11.10 |
신앙생활을 방해하는 1% (0) | 2024.11.03 |
할렐루야를 외치며! (1) | 2024.10.27 |
찬송이 시작될 때 (3) | 2024.10.20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