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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묵상, Joyful QT(2020)

[조이플 큐티] 2020년 9월 21일 ~ 9월 26일, 매일 큐티

by 조이플 교회 2020. 9. 21.

듣는 큐티

2020년 9월 26일(조이플 큐티 제1796호)


[사진 이은경 집사]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이신구 목사


(성경) 이사야 2:22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셈할 가치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은 우리에게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인생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셈할 가치가 어디 있느냐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심은 우리가 인생을 의지하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를 의지한다는 것은 혼자의 힘으로는 부족함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의지하던 대상이 무너지면 의지하던 사람도 함께 무너지는 것입니다. 호흡이 있어야 살아가는 인간이 똑같은 인생을 의지한들 호흡을 초월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이 땅위에서 영원히 살아갈 수 없습니다. 아무리 부모가 자녀에게 잘해주어도 자녀가 의지할 수 있는 기한은 정해져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는 언젠가 이별이라는 아픔을 겪어야 합니다. 또한 다른 사람에게서 우리는 종종 배신이라는 실망을 당하기도 하며, 나 자신에게서는 실패로 인한 좌절을 겪기도 합니다. 모두가 인생을 의지한 결과에서 오는 허무입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만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면 아픔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하시기에 이별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면 실망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단 한 번도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면 좌절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들에게는 오직 승리만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의지하지 말아야 할 가장 가까운 인생은 나 자신입니다. 자신을 의지하는 사람은 스스로가 교만에 빠집니다. 오직 우리는 하나님만을 의지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오늘이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날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에게 오늘은 행복 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이 행복을 내일로 미루다 기회를 놓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고 오늘 하나님을 의지하는 행복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감사합니다.


(기도제목)

전능하신 하나님! 

인생을 의지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여 주께 영광돌리는 삶을 살기 원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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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9월 25일(조이플 큐티 제1795호)


[사진 김엘리사 집사]


믿음 안에 있는가 확증하라



이신구 목사


(성경) 고린도후서 13:5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 받은 자니라”


인생은 일생입니다. 한 번만 주어지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한번 살아보고 다시 돌아가 되돌릴 수 있는 인생은 없습니다. 단지 후회만이 남을 뿐입니다. 우리가 후회되지 않는 삶을 살기 위하여 바울이 권면해 주는 말씀처럼 되돌리려 해도 되돌릴 수 없는 우리의 인생이 믿음 안에 있는가 우리 자신을 시험하고 우리 자신을 확증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인물 중에 무더기로 자신들의 잘못을 후회한 자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요셉의 형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하나님은 요셉을 통하여 그들의 후회에 새로운 기회를 주셨습니다. 참으로 다행이었습니다. 인류에게도 후회를 기회가 되도록 바꾸시는 역사를 주셨습니다. 인류가 죄악으로 인하여 구원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지만,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받을 수 있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안에 거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내 안에 내가 예수님 안에 거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거하지 않는 사람은 구원에 이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버림받은 자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이런 믿음 안에 살고 있는가 날마다 내 자신을 시험하고 확증하여 후회 없는 삶을 살기 원합니다. 사람을 의지하는 삶은 예수님을 멀리하게 유혹합니다. 내 삶의 목적이 사람에게 인정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따르는 자가 되는 것이어야 행복해집니다. 그런데 그런 삶은 어쩌면 세상에서는 외롭기만 합니다. 그래도 내 자신을 이런 믿음 안에 잘 세워가야 합니다.


바울은 자신의 몸을 쳐 복종하면서 믿음 안에 살려고 노력했다고 고백했습니다(고린도전서 9:27). 우리가 사는 인생보다 인생을 마치고 살아야 할 천국의 삶이 훨씬 더 많다는 것을 알기에 그런 노력을 기뻐했던 것입니다. 오늘 나의 믿음을 확인하고 확증하며 살기 원합니다.


감사합니다.


(기도제목)

전능하신 하나님! 

주님 안에 살며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믿음의 삶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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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9월 24일(조이플 큐티 제1794호)



주님 말씀만 의지하고 나갑니다



이신구 목사


(성경) 시편 17:4-5

“사람의 행사로 논하면 나는 주의 입술의 말씀을 따라 스스로 삼가서 포악한 자의 길을 가지 아니하였사오며 나의 걸음이 주의 길을 굳게 지키고 실족하지 아니하였나이다”


우리의 인생이 하나님의 말씀만 의지하고 나간다면 행복할 것입니다. 인생의 모든 문제는 오로지 말씀만 의지하는 인생이 되지 못하고 곁길로 빠질 때가 많아 생기는 것입니다. 인생에서 행복하려면 가고 서는 것을 잘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가라고 하실 때 가고 서라고 하실 때 서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가고 서기를 제 마음대로 하는 시계가 고장난 시계이듯 인생도 가고 서기를 제마음대로 한다면 고장난 인생일 수밖에 없습니다. 인생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만 가고 서야 합니다. 아무리 하고 싶어도 주의 말씀에 어긋나면 멈춰야 하고 아무리 하기 싫어도 주의 말씀에 하라고 하시면 오늘 시를 쓴 다윗처럼 말씀을 따라 순종해야 합니다.


가나안 땅을 앞에 두고 정탐꾼의 말에 가기를 주저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40년 동안 받은 훈련은 출애굽기 40:36-37의 말씀처럼 하나님의 뜻대로 구름이 성막 위에서 떠오를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앞으로 나아갔고 구름이 떠오르지 않을 때에는 떠오르는 날까지 나아가지 아니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인생에서 가고 서는 것을 결정할 때 무엇이 중요하게 작용하는 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나의 뜻인지 아니면 하나님의 뜻인지.


오늘 흐르는 찬양처럼 주님 말씀하시면 내가 나아가고 주님 뜻이 아니면 내가 멈춰서기 원합니다. 나의 가고 서는 것이 주님 뜻에 있음을 고백하며 ‘오 주님 나를 이끄소서!’라고 부르짖기 원합니다. 주께서 뜻하신 그곳으로 우리를 인도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주께서 이끄시는 대로 순종하며 살아야 합니다. 주께서 오늘도 연약한 우리들을 통해 일하시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주님 말씀만 의지하고 나가오니 주님 나라와 그 뜻을 위하여 오 주님 나를 이끄소서. 

감사합니다.


(기도제목)

전능하신 하나님! 

오늘도 주님 말씀만 의지하고 나가오니 저의 삶을 인도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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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9월 23일(조이플 큐티 제1793호)


[사진 김은아 집사]


사람을 의지하지 않습니다



이신구 목사


(성경) 요한복음 2:23-25

“유월절에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계시니 많은 사람이 그의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그의 이름을 믿었으나 예수는 그의 몸을 그들에게 의탁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심이요 또 사람에 대하여 누구의 증언도 받으실 필요가 없었으니 이는 그가 친히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아셨음이니라”


아브라함이 사라를 잃고 다시 장가들어 6명의 아들을 더 나은 이야기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믿음의 조상인 그가 말년에 가진 6명의 아들이 함축하는 의미가 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항상 동행했던 요셉이 억울하게 감옥에 가서도 하나님과 함께한 성경의 기록은 우리들에게 역시 큰 힘과 소망을 주기에 충분합니다. 그런데 감옥 안에서도 성실한 신앙인으로 살았던 그가 바로의 신하에게 자신의 억울함을 토로하며 자기를 꼭 기억해 달라고 부탁했지만 잊혀진 존재가 되었다는 성경의 기록도 역시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갖게 합니다.


사라를 잃은 아브라함이나 감옥 안에서 잊혀졌던 요셉의 생애가 어쩌면 인간 세상에서 우리가 겪는 많은 일들 중에 한 부분일 것입니다. 우리나라 속담에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이 있습니다. 열 사람 깊이의 물속을 아는 것이 한 사람의 속을 아는 것보다 쉽다는 것입니다. 


유월절에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계실 때, 많은 사람이 예수님의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예수님의 이름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을 의탁하지 않으셨습니다. 성경은 그 이유를 “이는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심이요 또 사람에 대하여 누구의 증언도 받으실 필요가 없었으니 이는 그가 친히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아셨음이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그 어렵다는 한 길 사람 속을 아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인간들처럼 사람을 의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속을 알기 때문입니다. 오직 하나님만 의지해야 한다는 사실을 몸소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누군가에게 어떤 기대치가 보여도 우리가 의지해야 할 분은 오직 하나님 뿐이십니다. 하나님만 믿고 나아가시기를 소망합니다. 


감사합니다.


(기도제목)

전능하신 하나님! 

오직 주님만 바라보며 주님만 믿고 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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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9월 22일(조이플 큐티 제1792호)


[사진 국정란 권사]


끝까지 하나님만 의지합시다



이신구 목사


(성경) 창세기 25:7-10

아브라함의 향년이 백칠십오 세라 그의 나이가 높고 늙어서 기운이 다하여 죽어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가매 그의 아들들인 이삭과 이스마엘이 그를 마므레 앞 헷 족속 소할의 아들 에브론의 밭에 있는 막벨라 굴에 장사하였으니 이것은 아브라함이 헷 족속에게서 산 밭이라 아브라함과 그의 아내 사라가 거기 장사되니라”


아브라함의 아들은 모두 몇 명일까요? 그 정도쯤이야 하면서 이삭과 이스마엘 2명이라고 답하실 것이라면 잠시만 기다려 주시기 바랍니다. 틀렸기 때문입니다. 주일학교에서 부르던 찬송 중에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일곱명의 아들이 있었는데요♩그중에 하나 키가 크고요 나머지는 작데요♪오른손 올려요 왼손 올려요♪’라는 것을 기억하십니까? 그때는 왜 일곱명이라는 가사대로 불렀으면서도 아브라함의 아들을 2명이라고 생각하고 있을까요? 그러나 사실 7명도 아닙니다. 아브라함에게는 모두 8명의 아들이 있었습니다.


놀랍게도 아브라함은 아내가 죽은 뒤 그두라라는 여인을 후처를 맞이하여 말년에 6명의 아들들을 더 낳았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자기 생전에 그들에게 재산을 주어 동방으로 떠나가게 했습니다. 그들도 자신의 아들들인데 이렇게 한 것은 사실은 이삭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이삭을 약속의 상속자로 결정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175세에 늙어 기운이 다하여 죽었습니다. 창세기 15:15에서 “너는 장수하다가 평안히 조상에게로 돌아가 장사될 것이요”라는 말씀대로 그는 끝까지 하나님만 의지하다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성경의 연대를 계산해보면 아브라함은 BC 2166~1992년까지 살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100세에 낳았으므로 이삭은 BC 2066년에 태어났고, 이삭은 60세에 에서와 야곱을 낳았으므로 야곱은 BC 2006년에 테어났습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야곱이 15살 될 때까지 생존하며 손주들에게 하나님만 의지하는 삶을 몸소 가르쳤을 것입니다. 


우리의 생애가 다할 때까지 아브라함처럼 끝까지 하나님만 의지하는 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감사합니다.


(기도제목)

전능하신 하나님! 

아브라함과 함께 하신 주께서 저희들과도 함께 하시며 약속을 이루심을 믿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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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9월 21일(조이플 큐티 제1791호)


[사진 김은아 집사]


하나님만 의지합시다



이신구 목사


(성경) 창세기 39:20-23

“…요셉이 옥에 갇혔으나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간수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 간수장이 옥중 죄수를 다 요셉의 손에 맡기므로 그 제반 사무를 요셉이 처리하고 간수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살펴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


형들에 의해 노예로 팔린 요셉은 애굽으로 팔려가서 바로의 신하 친위대장 보디발의 집에서 가정의 총무로 일하게 되었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시므로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심과 하나님이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볼 정도였습니다. 그러다가 주인의 아내가 유혹해 왔을 때,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창세기 39:9)라며 뿌리쳤지만 오히려 겁탈하려 했다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요셉은 철저히 하나님 앞에서의 신앙으로 하나님만 바라보며 살았던 것입니다.


감옥안에서도 요셉은 간수장에게 인정을 받아 감옥안의 모든 일을 맡게 되었는데, 이것도 역시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 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요셉은 노예로 팔려가든 감옥에 들어가든 하나님만 의지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요셉은 바로의 신하중 감옥에 갇혀있던 술맡은 관원장이 풀려나 복직될 꿈을 해몽하면서 자신이 억울함을 호소하게 됩니다. 창세기 40:14-15에서 “당신이 잘 되시거든 나를 생각하고 내게 은혜를 베풀어서 내 사정을 바로에게 아뢰어 이 집에서 나를 건져 주소서 나는 히브리 땅에서 끌려온 자요 여기서도 옥에 갇힐 일은 행하지 아니하였나이다” 


하나님을 의지했던 요셉이 자신의 억울함을 해결해달라고 그럴만한 사람에게 부탁했지만 결국 성경은 그사람이 요셉을 기억하지 못하고 잊었다고 기록합니다. 그동안 하나님만 의지하며 하나님이 주시는 형통함으로 살아오던 요셉이 왜 관원장을 의지했을까요? 사람은 사람에게서 배신을 당합니다. 배신하려고 일부러 그러지는 않았겠지만 결국 잊혀짐을 당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의지할 분은 오직 하나님 한분밖에 없음을 기억하고 하나님만 바라보기를 소망합니다.


감사합니다.


(기도제목)

전능하신 하나님! 

요셉과 함께 하시며 형통케 하신 하나님께서 오늘 저와도 함께 하시며 형통케 하심을 믿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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